지금 계신 그 자리에서 시작하시면 돼요.
마음먹고 시작해도 사흘을 넘기기가 어렵죠. 대개 이 셋 중 하나예요.
하루 건너뛰어도 아무 일이 없어요. 남는 게 없으니 다시 앉을 이유도 안 생기고요.
눈 감고 5분 지나면 무슨 말을 더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러다 손이 휴대폰으로 가죠.
같이 모여 기도할 땐 그렇게 뜨거웠는데, 문 닫고 혼자 앉으면 그 마음이 오래 안 가요.
예수님 시대엔 보통 사람들이 방 한 칸짜리 집에 살았고, 아이도 다섯씩 있었어요. 그런 집에 ‘나 기도한다, 문 열지 마라’ 할 방이 어디 있었겠어요. 바로 앞 구절에서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라 하신 걸 보면, 이 말씀은 닫힌 공간이 아니라 누구를 향해 기도하느냐를 말씀하신 거예요.
골방으로 옮긴 헬라어 ‘타마이온’은 ‘자르다’와 ‘담아두는 그릇’이 붙은 말이에요. 세상 것을 잘라내고 하나님의 말씀만 담아두는 자리라는 뜻이고요.
문이 열려 있으면 바깥이 보이고 소리가 들려요. 전화가 오고, ‘가스 불 껐던가’ 하는 생각이 들죠. 그 문을 닫는 거예요.
남의 골방이 아니라 내 골방이에요. 신앙 좋은 분께 기도를 부탁해 두고 정작 나는 들어가지 않는다면, 그건 내 골방이 아니고요.
그러니 책상 하나여도 되고, 차 안이어도 되고, 집 앞 산책로여도 돼요. 금요기도회처럼 수백 명이 모인 자리도 괜찮고요. 장소나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하나님께만 마음이 가 있으면, 그 순간 골방에 들어간 거예요.
그래서 만시간은 장소를 묻지 않아요.
지금 계신 그 자리에서 열고 앉으시면 돼요.
같은 본문에서 예수님은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는 것을 외식이라 하셨어요. 금식을 몇 번 했는지, 새벽기도를 며칠 채웠는지가 이력이 되면 기도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을 향하게 되거든요. 그러다 하루 빠지면 죄책감에 눌리고요.
만시간은 시간을 셉니다. 그래서 더 조심하려고 이렇게 만들었어요.
숫자는 자랑하시라고 세는 게 아니라, 내일 다시 앉으시라고 세는 거예요. 그 숫자는 나와 하나님만 보시면 돼요.
시작을 누르면 그때부터 시간이 흘러요. 무엇을 얼마나 잘 드렸는지는 묻지 않아요. 앉아 있었다는 것만 남아요.
목표도 없고 벌점도 없어요. 오늘 앉은 만큼 그대로 남고, 그 숫자가 내일 다시 앉게 해요.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죠. 그래서 오늘 읽을 한 구절과 본문을 기도실 안에 미리 놓아 뒀어요.
매일 한 구절이 기도실 첫 화면에 놓여요. 읽고 그 말씀 그대로 기도하시면 돼요.
어디부터 읽어야 할지 찾지 않아도 돼요. 며칠째인지도 함께 보여서 자연스럽게 이어져요.
평생을 결심하지 않으셔도 돼요. 7일이면 충분해요. 그다음은 몸이 기억하고요.
혼자서는 좀처럼 나오지 않는 통성기도를, 함께 부르짖는 소리와 함께 드려요.
지금 몇 명이 함께 기도하고 있는지, 어떤 제목으로 기도가 모이고 있는지 보여요. 누가 무엇을 기도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고요. 숫자만 조용히 쌓여요.
기도를 마치면 그 자리에 조용히 표식이 하나 남아요. 지도를 열면 내 주위에서 오늘 몇 분이 기도했는지 보이고, 이름 없이 서로에게 아멘을 보낼 수 있어요.
앱을 열면 오늘의 기도가 먼저 보여요. 새벽기도·중보기도·통성기도가 각각 몇 번이었는지, 이번 주 며칠을 채웠는지가 한 화면에 담겨요.
설치할 게 없어요. 링크를 누르면 바로 열려요.
짧아도 괜찮아요. 오늘 앉았다는 것이 전부예요.
어제 앉은 시간이 그대로 남아 있어요. 그 한 줄이 오늘을 불러요.
기도는 하나님과 나 사이의 일이에요. 만시간은 그 사이에 끼어들지 않아요.
나만 봐요. 운영자도 다른 분도 열어볼 수 없어요.
올린 사람이 누구인지 어디에도 남지 않아요.
몇 명이 몇 분 기도했는지, 통계는 집계로만 써요.
교회용은 따로 준비돼 있어요. 구역별 기도 시간, 새벽기도 참여, 중보기도 제목을 교회 단위로 모아 봐요. 성도의 기도 내용은 목회자에게도 보이지 않아요. 보이는 것은 숫자뿐입니다.
교회용 화면은 신청하신 교회에만 따로 열어 드려요. 아래로 남겨 주시면 확인하고 연락드릴게요.
교회용 신청하기
가입 없이 바로 써보실 수 있어요.
오늘 5분이면 충분해요.